자살 트라우마와 신체장애를 극복하게 해준 심리치료상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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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ㅇㅇ
조회 9,777회
작성일 2019-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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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회차의 상담을 마치고
아빠는 내가 어렸을 때 부터 가정폭력을 일삼았다.
평소에는 정말 좋은 사람인데 술만 먹으면 180° 다른 사람이 된다.
아빠가 술을 먹고 들어 올때면 난 늘 무서웠고, 불안하고 초조했다.
성인이 되어, 엄마의 부탁으로 오빠랑 같이 일을 하게 되었는데,
오빠 역시 아빠처럼 폭행과 폭언을 일삼았다.
일을 잘 못한다는 이유, 집에 늦게 들어갔다는 이유, 지각했다는 이유 등등 쳇바퀴처럼 반복되는 일상.
오빠랑 아빠의 화난목소리만 들어도 너무 무서웠고, 언성이 조금만 높아져도 심장이 뛰고 숨이 막혀서 죽을 것만 같았다.
나는 끝나지 않는.. 끝이 보이지 않는 이 삶을 더 이상 견딜 자신이 없었다.
도망갈까도 수십번, 수백번 생각했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웬지 나를 지구 끝까지 쫓아 올 거만 같았다.
내가 있는 곳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찾아 올 거 같다는 생각이 내 머릿속에 맴돌았다.. 오빠는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니까.
‘내가 없어지면 되겠다. 그럼 이 모든게 끝이 난다.’ 결국 내가 택한 방법은 자살이다.
두렵지 않았다.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오히려 홀가분했다. 나는 하루에도 몇 번이고 생각해왔던 일이였다.
그 때까지 나는 앞으로 닥칠 일을 예상하지 못했다.
내가 눈 뜬 곳은 다름 아닌 병원의 중환자실. 장시간의 수술을 받고 며칠만에 깨어났다.
내가 깨어났을 때, 나는 절망에 빠졌다. ‘내가 왜 여기 있지?’
이게 뭔가 싶기도 하고 거울로 비친 내 모습에 더 절망했다.
갈기갈기 찢겨져있는 내 몸을 보니 하염없이 눈물이 났고, 내 모습을 보는게 싫어졌다. 내 자신이 싫어졌다.
장애까지 갖게 되버린 나는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너무 힘들었다.
하루하루가 절망적이였고, ‘이건 꿈일거라고’ 수백번 생각했다.
이렇게 살 바에는 죽는게 낫다. 도저히 이 모습으로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3년간 12번의 수술을 해왔고, 그때마다 고통의 연속이었다.
너무도 죽고 싶었다. 하지만 죽을 자신이 없었다.
살고 싶어서가 아니라 또 이렇게 될까봐... 그게 무서웠다.
병원생활을 끝마치고도 밖에 자유롭게 나갈 수가 없었다. 사람들 만나는게 두려웠다.
장애를 가진 내 모습이 너무 초라해서... 너무 자존심이 상하고 나를 이상하게 쳐다볼것만 같아서... 너무 부끄럽고 수치스러워서...
나를 비웃는 것 같아서.. 그로인해, 나는 늘 혼자였다.
사람 만나는 거 좋아하고 친구들과 어울리기 좋아하고, 노는 거 좋아했던 내가 한순간에 이렇게 되버리니까 이 현실이 너무 외롭고 비참했다.
무인도에 나 혼자 버려진 느낌.
혼자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고, 가족에 대한 원망으로만 내 마음속 깊이 자리 잡았다.
하루하루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울고 자는 것만 반복되는 나날들...
심리상담센터에 오기까지 나는 수 개월간 고민만 했다. 전화하는 것조차 힘이 들었다.
그래서 번호를 눌렀다 지웠다를 수십번... 전화 통화하는것 조차도 내겐 너무 어려웠다.
자신이 없었다.
용기를 내고 첫 방문한 날, 원장님과 대면이 이루어졌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너무 떨렸다.
어떻게 내 얘기를 해가야 할지, 내 얘기를 하면 저 사람이 나를 정신병자 취급하지 않을까?
나를 이상하게 보지 않을까? 별의 별 생각을 다했던 것 같다.
얘기를 해나가면서 하염없이 눈물이 났고, 그 자리를 박차고 도망가고 싶었다.
누군가에게 처음 하는 얘기들, 그리고 내 속마음을 다 들켜버린게 너무 창피했다.
그렇게 한 시간이 흐르고, 심리검사지를 받아서 집에 왔다.
내가 왜 갔을까하는 후회가 들었다. 자신이 없었다.
‘그래, 심리검사지만 작성해서 결과만 듣고 상담은 하지말자’ 라고 생각하고 심리검사 결과를 들으러 갔다.
예상은 했지만, 눈으로 직접 보니 더 심각성이 와닿았다. 고민이 되었다.
‘처음 보는 사람한테 내 지나온 삶을 얘기 한다는게, 내가 겪고 있는 어려움을 얘기 한다는게 가능할까.. 이 사람들을 믿어도 될까?
이게 효과가 있을까?... 내가 정말 바뀔 수 있을까?... 나에게 기적이 일어날까?...
솔직히 심리상담치료가 적은 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내가 형편이 좋은 것도 아니고
그래도 내가 정말 변할 수 있다면 속는 셈치고 한번 해보자‘ 이 마음으로 첫걸음을 내딛은 것 같다.
첫 심리상담치료를 받는 날, 차주현 선생님과 상담을 하면서 내 머릿속은 온통???????? 물음표. ‘이게 뭐지?’ 라는 생각만 자꾸 맴돌았다.
내가 생각한 상담과는 전혀 다르다.
내 얘기를 듣고 나를 위로해주고 다독여줄 줄 알았는데 오히려 나를 혼내고 있는 게 아닌가..?
첫 상담은 그렇게 멘붕이었다.
하지만, 회차를 거듭할수록 나는 달라지고 있었다.
혼자 망상에 빠진 내 모습이 조금씩 거기에서 벗어나고 있었고, 뭔가를 하려고 시도해보고 도전해보는 내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지금은 그 덕에 직장까지 얻게 되었다.
바쁜 나날들을 보내니까 잡생각들이 덜들었고, ‘나도 뭐든지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구나!’ 하는 자신감도 생겨났다.
가족에 대한 원망도 누그러졌고, 잘 지내보려고 노력중이다.
사람 말을 잘 듣지 않고 내 마음대로 해석해버리는 경향이 있었는데 그것 또한 사람 말을 잘 들으려고 노력하고 있고,
사람들 만나는 걸 피하기만 했는데 누구든지 만나려고 계속적으로 시도 중이다.
변화하는 내 모습을 처음에는 인지하지 못했는데,
어느 순간 바뀌고 있는 나를 보고서 이런 큰 변화에 너무 놀라웠다.
나의 가장 큰 변화는 나를 더 소중하게 생각하게 되었고,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는 말이 있듯이,
나 혼자 움츠리고 기죽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장애가 있다고 바보처럼 살 필요는 없다는 것을... 남들 앞에서 당당해지고 있는 내 모습을 보니 흐뭇하고 내 자신이 대견스럽다.
지금은 죽지 못해서 사는게 아니라 정말 살고 싶다. 이왕 사는거면 멋지게!. 열심히 살고싶다!
나에게 12회의 상담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이었고, 심리상담은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
차주현 선생님 감사합니다.
아빠는 내가 어렸을 때 부터 가정폭력을 일삼았다.
평소에는 정말 좋은 사람인데 술만 먹으면 180° 다른 사람이 된다.
아빠가 술을 먹고 들어 올때면 난 늘 무서웠고, 불안하고 초조했다.
성인이 되어, 엄마의 부탁으로 오빠랑 같이 일을 하게 되었는데,
오빠 역시 아빠처럼 폭행과 폭언을 일삼았다.
일을 잘 못한다는 이유, 집에 늦게 들어갔다는 이유, 지각했다는 이유 등등 쳇바퀴처럼 반복되는 일상.
오빠랑 아빠의 화난목소리만 들어도 너무 무서웠고, 언성이 조금만 높아져도 심장이 뛰고 숨이 막혀서 죽을 것만 같았다.
나는 끝나지 않는.. 끝이 보이지 않는 이 삶을 더 이상 견딜 자신이 없었다.
도망갈까도 수십번, 수백번 생각했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웬지 나를 지구 끝까지 쫓아 올 거만 같았다.
내가 있는 곳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찾아 올 거 같다는 생각이 내 머릿속에 맴돌았다.. 오빠는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니까.
‘내가 없어지면 되겠다. 그럼 이 모든게 끝이 난다.’ 결국 내가 택한 방법은 자살이다.
두렵지 않았다.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오히려 홀가분했다. 나는 하루에도 몇 번이고 생각해왔던 일이였다.
그 때까지 나는 앞으로 닥칠 일을 예상하지 못했다.
내가 눈 뜬 곳은 다름 아닌 병원의 중환자실. 장시간의 수술을 받고 며칠만에 깨어났다.
내가 깨어났을 때, 나는 절망에 빠졌다. ‘내가 왜 여기 있지?’
이게 뭔가 싶기도 하고 거울로 비친 내 모습에 더 절망했다.
갈기갈기 찢겨져있는 내 몸을 보니 하염없이 눈물이 났고, 내 모습을 보는게 싫어졌다. 내 자신이 싫어졌다.
장애까지 갖게 되버린 나는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너무 힘들었다.
하루하루가 절망적이였고, ‘이건 꿈일거라고’ 수백번 생각했다.
이렇게 살 바에는 죽는게 낫다. 도저히 이 모습으로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3년간 12번의 수술을 해왔고, 그때마다 고통의 연속이었다.
너무도 죽고 싶었다. 하지만 죽을 자신이 없었다.
살고 싶어서가 아니라 또 이렇게 될까봐... 그게 무서웠다.
병원생활을 끝마치고도 밖에 자유롭게 나갈 수가 없었다. 사람들 만나는게 두려웠다.
장애를 가진 내 모습이 너무 초라해서... 너무 자존심이 상하고 나를 이상하게 쳐다볼것만 같아서... 너무 부끄럽고 수치스러워서...
나를 비웃는 것 같아서.. 그로인해, 나는 늘 혼자였다.
사람 만나는 거 좋아하고 친구들과 어울리기 좋아하고, 노는 거 좋아했던 내가 한순간에 이렇게 되버리니까 이 현실이 너무 외롭고 비참했다.
무인도에 나 혼자 버려진 느낌.
혼자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고, 가족에 대한 원망으로만 내 마음속 깊이 자리 잡았다.
하루하루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울고 자는 것만 반복되는 나날들...
심리상담센터에 오기까지 나는 수 개월간 고민만 했다. 전화하는 것조차 힘이 들었다.
그래서 번호를 눌렀다 지웠다를 수십번... 전화 통화하는것 조차도 내겐 너무 어려웠다.
자신이 없었다.
용기를 내고 첫 방문한 날, 원장님과 대면이 이루어졌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너무 떨렸다.
어떻게 내 얘기를 해가야 할지, 내 얘기를 하면 저 사람이 나를 정신병자 취급하지 않을까?
나를 이상하게 보지 않을까? 별의 별 생각을 다했던 것 같다.
얘기를 해나가면서 하염없이 눈물이 났고, 그 자리를 박차고 도망가고 싶었다.
누군가에게 처음 하는 얘기들, 그리고 내 속마음을 다 들켜버린게 너무 창피했다.
그렇게 한 시간이 흐르고, 심리검사지를 받아서 집에 왔다.
내가 왜 갔을까하는 후회가 들었다. 자신이 없었다.
‘그래, 심리검사지만 작성해서 결과만 듣고 상담은 하지말자’ 라고 생각하고 심리검사 결과를 들으러 갔다.
예상은 했지만, 눈으로 직접 보니 더 심각성이 와닿았다. 고민이 되었다.
‘처음 보는 사람한테 내 지나온 삶을 얘기 한다는게, 내가 겪고 있는 어려움을 얘기 한다는게 가능할까.. 이 사람들을 믿어도 될까?
이게 효과가 있을까?... 내가 정말 바뀔 수 있을까?... 나에게 기적이 일어날까?...
솔직히 심리상담치료가 적은 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내가 형편이 좋은 것도 아니고
그래도 내가 정말 변할 수 있다면 속는 셈치고 한번 해보자‘ 이 마음으로 첫걸음을 내딛은 것 같다.
첫 심리상담치료를 받는 날, 차주현 선생님과 상담을 하면서 내 머릿속은 온통???????? 물음표. ‘이게 뭐지?’ 라는 생각만 자꾸 맴돌았다.
내가 생각한 상담과는 전혀 다르다.
내 얘기를 듣고 나를 위로해주고 다독여줄 줄 알았는데 오히려 나를 혼내고 있는 게 아닌가..?
첫 상담은 그렇게 멘붕이었다.
하지만, 회차를 거듭할수록 나는 달라지고 있었다.
혼자 망상에 빠진 내 모습이 조금씩 거기에서 벗어나고 있었고, 뭔가를 하려고 시도해보고 도전해보는 내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지금은 그 덕에 직장까지 얻게 되었다.
바쁜 나날들을 보내니까 잡생각들이 덜들었고, ‘나도 뭐든지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구나!’ 하는 자신감도 생겨났다.
가족에 대한 원망도 누그러졌고, 잘 지내보려고 노력중이다.
사람 말을 잘 듣지 않고 내 마음대로 해석해버리는 경향이 있었는데 그것 또한 사람 말을 잘 들으려고 노력하고 있고,
사람들 만나는 걸 피하기만 했는데 누구든지 만나려고 계속적으로 시도 중이다.
변화하는 내 모습을 처음에는 인지하지 못했는데,
어느 순간 바뀌고 있는 나를 보고서 이런 큰 변화에 너무 놀라웠다.
나의 가장 큰 변화는 나를 더 소중하게 생각하게 되었고,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는 말이 있듯이,
나 혼자 움츠리고 기죽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장애가 있다고 바보처럼 살 필요는 없다는 것을... 남들 앞에서 당당해지고 있는 내 모습을 보니 흐뭇하고 내 자신이 대견스럽다.
지금은 죽지 못해서 사는게 아니라 정말 살고 싶다. 이왕 사는거면 멋지게!. 열심히 살고싶다!
나에게 12회의 상담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이었고, 심리상담은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
차주현 선생님 감사합니다.